가상현실(VR)을 통해 이성의 몸을 체험한 사람들은 실제 자신의 성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된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나왔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는 가상현실을 통해 성이 뒤바뀌는 독특한 실험 결과 피실험자 일부에서 성정체성(gender identity) 혼란이 관찰됐다고 최근 발표했다. 성정체성이란 남성성 또는 여성성의 기본적 인식으로, 자신을 남성 또는 여성으로 확실히 지각하는 것을 뜻한다.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을 A와 B그룹으로 나누고 가상현실 헤드셋을 동원, 1인칭 시점에서 이성의 몸을 체험하게 했다. 연구팀은 A그룹 영상 속 이성의 몸 일부를 막대로 건드리는 동시에 실제 피실험자의 신체 같은 곳을 접촉했다. B그룹은 터치 없이 VR 디스플레이만 보도록 제한했다.
이후 연구팀은 각 그룹으로부터 자신의 성별에 대한 느낌을 보고 받았다. 그 결과, A그룹은 이성의 몸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B보다 많았다. 이에 대해 연구팀 관계자는 “눈으로 보는 동시에 촉감까지 느끼게 되면 피실험자들은 가상의 신체가 자기 것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실험에서는 피실험자 반응을 통해 암묵적 태도를 측정하는 암묵적연관성테스트(implicit association test, IAT)도 이뤄졌다. 그 결과 이성의 몸을 VR과 터치로 체험한 A그룹은 양성 감각의 균형이 B그룹보다 뛰어났다. 즉, A그룹은 각자 본래의 성이 본인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미약하게나마 받았다.
연구팀은 자신의 성에 대해 잠재적으로 느끼던 사실이 인지상의 내용과 어긋나면서 이 같은 실험결과가 나왔다고 추측했다. 즉, VR을 통해 성정체성의 혼란이 야기되자 어긋남을 교정하기 위해 평상시 자신의 성에 대한 감각을 조정해 버렸다는 이야기다.
일찍이 성정체성은 남자와 여자 중 어느 한 쪽으로 뚜렷이 나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몸을 가졌으니 자신을 여성으로 느끼는 것은 당연한 말 같지만 어떤 이유로 성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 원인은 아직 제대로 확인된 바가 없다.
이번 실험결과는 환경이나 체험에 따라 성정체성이 얼마든 바뀔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때문에 일부에선 성동일성장애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힐 연구의 첫걸음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