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난데없이 '좀비 대비책'을 들고 나와 화제다.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에 해당하는 CDC는 최근 홈페이지 전면에 '좀비 대비책(Zombie Preparedness)'을 내세우며 관련 블로그와 교육자들을 위한 좀비 대책 가이드, 좀비 대비책 포스터 등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CDC는 "대규모 좀비가 발생하면 맞서 싸우는 대신 미리 마련한 피난처에 숨어 당국의 대응을 기다리라"고 조언하며 준비할 물품 리스트까지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1인당 하루 물 1갤런(3.8ℓ) ▲잘 상하지 않는 음식 ▲구급약 ▲다용도 칼과 덕트 테이프, 배터리로 작동하는 라디오 등 도구 ▲표백제, 비누, 수건 등 위생용품 ▲갈아입을 옷과 침구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여권 등 신분증 ▲좀비에게 물린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응급처치 키트 등이 필요하다.
코로나19 방역에 정신없을 CDC가 갑자기 좀비 대비책을 들고 나온 데 대해 의문이나 공포심을 느낄만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 좀비가 나타났다는 보고는 없다.
대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 주 초 미국의 일부 매체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언급하며 CDC의 대비책을 함께 소개했고, 이런 내용이 지난 3일부터 SNS에 빠르게 퍼져나가며 구글의 관련 검색 트래픽까지 급증시켰다. CDC 홈페이지도 트래픽이 3배나 증가, 한때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466년 전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2021년에는 좀비를 떠올릴 만한 구절이 있다. “젊은이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반쯤 죽어있는(half−dead) 상태다. 그리고 고귀한 곳에서 큰 악이 일어난다: 사람들과 존엄성, 종교에 해를 미치는 슬픈 일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한한 슬픔으로 죽어간다. 애도하는 여성, 역병을 퍼트리는 여자 괴물. 위대한 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모든 세상이 끝날 것이다”가 이에 해당한다.
사실 CDC가 좀비 대비책을 내놓은 것은 거의 10년 전이다. 2011년 5월 CDC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홈페이지 접속량이 저조하자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게시물로 흥미를 끌어야한다고 생각, 좀비 대비책을 게시했다.
당시 담당자였던 데이브 데이글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훌륭한 메시지를 준비했다. 공중보건이 섹시한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홈페이지에는 "좀비 대비책이 새로운 방문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캠페인으로 메우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됐다. 우리는 좀비 대비책을 통해 계속 많은 방문자들과 접촉할 것"이라고 적혀있다. CDC는 올해도 한 차례 업데이트를 실시하는 등 간간히 콘텐츠를 손보고 있다.
좀비 문제는 미국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인기있는 공중보건 테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는 과거에 자체 좀비 생존 캠페인을 운영했으며, 캐나다 적십자 역시 CDC와 비슷한 콘텐츠를 선보였다. 게다가 CDC는 좀비 대비책이 홍수나 지진 또는 기타 긴급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도 유용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CDC의 대책에 대해 비판적인 '좀비 마니아'들도 있다. 데이글은 "우리가 홈페이지를 열고 가장 먼저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어떤 무기를 추천하느냐'는 것이었다"며 "우리는 공중보건을 위한 기구이기 때문에 무기를 권장하지 않는다. 그 문제는 관련 기관에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