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첫 블랙홀 관측을 가능하게 한 전파망원경의 효율을 대폭 향상시키는 부품이 일본에서 개발됐다. 양자컴퓨터 응용 가능성까지 제기돼 관심이 쏠렸다.
일본 국립천문대(NAOJ)는 20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새로 개발한 초저 소비전력 증폭기 ‘SIS 앰프’를 공개했다. 이 증폭기는 M87은하 내의 블랙홀 M87*(포웨히)를 잡아낸 전파망원경이 해결해야 할 치명적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게 NAOJ 설명이다.
전파망원경은 우주에 존재하는 먼지와 가스를 관측한다. 이런 물질들이 발산하는 미약한 전파를 파라볼라 안테나로 모아 수신기로 검출하는 방식이다. 대중에 익숙한 광학망원경의 성능은 화소수로 좌우되는데, 전파망원경의 경우 안테나 하나당 수신기 숫자가 화소 수와 같다.
NAOJ 첨단 기술센터 코지마 타카후미 부교수(초전도 일렉트로닉스 분야)는 “안테나 하나에 집적되는 수신기 수가 곧 전파망원경의 관측 효율과 직결되기에 각국의 개발 경쟁이 뜨겁다”며 “기술적 한계로 전파망원경 한 기에 탑재할 수 있는 수신기는 보통 10개이고, 성능이 뛰어나도 많아야 64개”라고 설명했다.
전파망원경 수신기를 안테나에 많이 집적하지 못하는 이유는 엄청난 발열이다. 수신기는 우주의 극히 미약한 전파를 잡아내야 하기 때문에 노이즈가 적은 초전도재료로 제작한다. 초전도 상태 실현을 위해서는 극저온 환경이 필요하므로 수신기는 냉각기 내에 넣는데, 수신기가 많을수록 전파망원경 성능은 높아지지만 반도체 증폭기 소비전력 탓에 발열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대개 전파망원경은 천체의 전파를 파라볼라 안테나로 모아 초전도 기술을 이용한 수신기로 받는다. 이후 그 신호를 해석해 정보를 얻는데, 수신기의 핵심 부품은 초전도체 절연체를 겹친 ‘SIS 믹서’다.
코지마 부교수는 “‘SIS 믹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영하 269℃까지 냉각해야 한다. ‘SIS 믹서’로 출력된 신호는 역시 영하 269℃ 환경의 반도체 증폭기로 증폭한 후 판독한다”며 “우주에서 날아드는 신호는 극히 미약해 증폭기 성능이 좋을수록 증폭량이 많으면서도 불필요한 노이즈가 섞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기존의 전파망원경 냉각기는 보통 수신기 100개를 넘길 수 없었다”며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술 개발을 거듭한 결과, 초전도 재료로 된 주파수 변환기를 두 개 조합한 새로운 부품을 제작했다”고 덧붙였다.
‘SIS 믹서’ 2개를 연결, 증폭 소자로 활용하는 초전도 마이크로파 증폭기 ‘SIS 앰프’는 실험에서 입력된 신호의 주파수는 그대로 두고 파워만 46배 증폭했다. 여기에 소비전력은 기존 장비의 1000분의 1가량으로 대폭 낮아졌다.
코지마 부교수는 “냉각 능력만 따지면 기존의 1000배나 되는 수신기를 집적할 수 있는 성능”이라며 “이번 성과는 양자컴퓨터가 풀어야 할 과제를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양자컴퓨터 개발자들이 주로 시도하는 방식은 초전도다. 양자비트는 초전도 재료로 이뤄지므로 전파망원경처럼 냉각이 필수다. 양자비트로부터 미약한 신호를 증폭하는 반도체 증폭기는 흔히 냉동기 안에 탑재된다. 전파망원경 수신기와 비슷한 방식이다.
코지마 부교수는 “현재 개발되는 양자컴퓨터의 양자비트 수는 수십~수백 개로, 완전 실용화 단계에서는 100만 개가 필요하다”며 “양자비트를 집적하려고 해도 전파망원경과 같은 이유로 기존 냉동기로는 발열을 제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파망원경 개발로 초전도체 노하우를 축적한 NAOJ는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양자컴퓨터 개발에도 참가하고 있다. 일본은 오는 2050년까지 양자컴퓨터 실용화를 목표로 한다.
코지마 부교수는 “전파천문학 기술이 다른 산업에 도움을 주는 것은 학자로서 대단히 기쁜 일”이라며 “역으로 다른 분야의 기발한 아이디어나 새로운 지식이 전파천문학 발전에 미칠 영향도 기대된다”고 전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