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경제면을 보면 이따금 '현대판 창문세(window tax)'라는 표현을 접한다. 불합리한 세금 기사에 자주 인용되는 창문세는 1600~1800년대 영국에 실존한 믿기 힘든 조세 제도다.

영국의 오래된 건물 중에는 멀쩡한 창문 자리를 벽돌로 막은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막힌 창문을 보고 예전에는 "노예를 가뒀다" "귀신이 나와 막았다" 등 다양한 억측이 돌았다.

영국 작가이자 역사가 앨리스 록스턴은 SNS를 통해 이 막힌 창문의 진짜 사연을 지속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막힌 창문에 대해 혹시나 오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영국의 고택 창문이 막힌 이유를 설명하는 역사가 앨리스 록스턴 <사진=앨리스 록스턴 인스타그램>

이 희한한 창문은 주민들이 인위적으로 틀어막은 것들이다. 이유는 영국 정부가 거둔 창문세다.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1696년 창문세를 도입해 무려 155년 유지하다 1851년에야 폐지했다. 당시 정부는 이른바 고정 자산세의 일환으로 주택의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 스코틀랜드 역시 1748년 창문세를 도입해 1851년까지 유지했다.

영국 정부는 창문이 많을수록 건물이 크고, 이는 넉넉한 살림을 의미한다고 봤다. 창문세의 기준은 건물 당 30개 이상이었다. 이 구간에 가중치를 적용해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다만 교회 등 공공건물이나 연 수입이 200파운드(약 33만원) 이하인 농가, 유제품 공장, 양조장은 창문세를 면제했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오는 이 세금은 과거 사람들에게도 반발을 샀다.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주민들은 빛과 신선한 공기를 포기하고 벽돌로 막아 창문 수를 줄였다.

원래 냈던 창문을 벽돌로 막은 건물. 영국에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사진=앨리스 록스턴 인스타그램>

영국 정부도 국민들이 창문을 벽돌로 막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않는 창문은 과세 대상에서 뺐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비판에도 꿈쩍하지 않던 정부는 환기가 안 되고 일조량이 부족해 국민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지고 행복권을 침해한다며 저명인사들까지 반대 운동에 동참하자 창문세를 폐지했다.

참고로 이런 창문세는 영국은 물론 프랑스, 아일랜드, 벨기에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시행됐다. 벨기에의 경우 아직도 벽돌로 막힌 외벽에 페인트로 창문을 그려 넣은 집을 가끔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영국 창문세가 건축문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줬다는 사실이다. 창문세가 폐지된 뒤 창문을 크게 늘린 주택이 크게 유행했고 창문의 모양과 배치에도 다양성이 생겼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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