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장을 연결하는 신경회로에 접속, 장을 통해 뇌에 명령을 내리는 실험이 성공했다. 장은 제2의 뇌로 불릴 만큼 뇌와 연관성이 깊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연구팀은 지난달 말 공개한 실험 보고서에서 쥐의 장을 조작해 뇌에 명령을 내리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동물의 장기가 뇌의 명령을 받으며, 뇌가 다양한 방법으로 장기의 역할을 조정한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 다만 장은 뇌의 명령을 수행하며 이따금 말대꾸를 하거나 역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이유로 많은 학자들은 장이나 장내 세균총이 뇌와 연결돼 정보를 주고받는 것으로 본다. 다만 양측의 연결고리를 확실하게 드러낸 증거는 좀처럼 잡기 어려웠다.
MIT 연구팀은 세포 연구에 이용되는 옵토제네틱스(optogenetics, 광유전학)에 주목했다. 이 기술을 활용해 초소형 특수 장치를 만든 연구팀은 쥐의 뇌와 장을 연결하는 신경회로를 조작하는 데 성공했다.
실험 관계자는 "옵토제네틱스를 응용한 섬유를 쥐의 뇌와 장을 연결하는 신경회로에 접속했다"며 "쥐의 장에서 뇌로 보낸 명령이 실제로 수행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섬유 모양의 신경회로 조작 장치는 머리카락 정도로 가늘지만 내부에 전극과 온도 센서, 투약을 위한 마이크로 유체 채널(유체가 흐를 수 있는 아주 작은 이동 경로)을 갖췄다"고 소개했다.
옵토제네틱스는 특수 유전자를 이용해 세포, 특히 신경세포에 빛 감지 능력을 부여한다. 이후 특정한 빛을 쏘아 해당 세포의 활동을 마음대로 제어하는 기술이다.
실험 관계자는 "옵토제네틱스 장치로 장 자체의 기능뿐만 아니라 뇌가 관여하는 행동까지 통제할 수 있었다"며 "쥐의 장 세포를 자극해 뇌에 일정한 보상을 요구하거나 먹지 않아도 포만감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MIT는 이번 실험의 대상이 쥐인 관계로 인간도 같은 방법이 적용될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다만 이런 시도를 통해 뇌와 장의 연결고리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 뇌 문제를 장을 통해 고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실험 관계자는 "뇌와 장의 관계가 규명되면 손상된 뇌를 어렵고 위험한 외과수술 대신 장내 환경 개선 만으로 다스릴지도 모른다"며 "머리가 아프면 배부터 살펴보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뇌와 장의 연관성에 대한 탐구는 전부터 활발하다. 2019년 연구에서는 분변 이식을 받은 어린이의 자폐스펙트럼 장애 증상이 완화됐다. 2022년 미국 휴스턴감리교병원 연구팀은 뇌진탕을 일으키면 장내 세균총이 큰 변화가 겪는다는 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