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도 기억력에 필적하는 능력을 가졌으며, 이를 여러 세대에 걸쳐 계승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세균은 전쟁터의 군인처럼 동료에 위험을 알리고 죽는 등 의외의 면모가 실험을 통해 드러나 왔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오스틴(UT 오스틴) 연구팀은 22일 공개한 실험 보고서에서 세균도 기억이 있고 이를 세대 간에 계승한다고 주장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뇌조차 없는 세균이 환경에 대한 기억을 가졌다는 실험 결과에 학계 관심이 쏠렸다.
연구팀은 대장균을 이용한 실험에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연구팀은 대장균이 지구상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원소 철을 적극 활용해 환경에서 모은 정보들을 세포 내에 저장한다고 추측했다.
실험 관계자는 "작은 세균이 무엇인가 학습하는 듯한 현상은 이전부터 관찰돼 왔다"며 "대장균에 뉴런이나 시냅스로 구성된 신경계는 없기 때문에 이들의 기억은 인간과 같은 의미는 아니며,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와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균에 뇌는 없지만 환경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비슷한 환경을 만날 때 저장된 정보에 빠르게 접근하고 유용하게 사용하는 듯하다"며 "이런 일종의 기억이 활성화되는 열쇠는 다름 아닌 철"이라고 전했다.
연구팀은 대장균의 세포에 들어 있는 철의 양이 각각 다르며, 철이 적은 세균일수록 무리 지어 잘 이동하는 사실에 주목했다. 반대로 철을 잔뜩 함유한 세균은 끈적끈적한 접착성 생물막(바이오필름)을 끊임없이 형성했다.
실험 관계자는 "철이 적으면 이동을 잘하는 것은 좀 더 철이 풍부한 환경으로 옮겨가려는 행동"이라며 "철이 많을 경우에는 세균도 환경에 안주해 생물막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구의 역사를 생각하면 철을 이용한 정보 보존 시스템은 생물이 살아가는 이치와 잘 맞다"며 "지구 대기에 산소가 포함되기 전 초기 생명체의 세포들은 철을 이용해 생존에 필요한 다양한 일을 처리했다"고 덧붙였다.
학계는 세포의 이 같은 특성을 이용하면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할 길이 열릴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대량의 사망자를 낼 수 있는 골치 아픈 약제내성균(슈퍼 버그)의 대책 마련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