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00년 된 페루 암각화는 환각제를 사용한 고대인의 의식을 묘사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와리 등 일부 고대 문명이 식물에서 얻은 환각제를 사용한 사실은 여러 조사에서 이미 확인됐다.
폴란드 아담미츠키에비치대학교 고고학자 안드레이 로즈와도브스키 교수 연구팀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페루 남부의 약 2000년 전 암각화 일부가 환각제를 사용한 주술사의 의식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약 500만㎡ 규모의 페루 남부 유적 토로 무에르토에 자리한 수많은 고대인 암각화를 오래 조사했다. 토로 무에르토의 암각화는 지그재그로 난 선이나 기하학적 무늬와 함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 다수 새겨졌다.
연구팀은 암각화 속 추상적인 도형들이 참가자들을 다른 차원으로 인도하는 의식을 나타낸다고 추측했다. 페루가 정복되기 전까지 오랜 세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 암각화들은 사막 협곡을 따라 약 2600개가 분포한다.
안드레이 교수는 "암각화에는 지역 특유의 춤추는 인물상 단산테스(danzantes, 스페인어로 무용수를 의미)와 기하학 문양이 반복적으로 그려져 있다"며 "기하학 무늬는 대부분 지그재그 선이나 폭이 다른 직선, 구불구불한 선, 점, 원 등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까지 학자들은 이런 문양이 뱀이나 번개, 물을 나타낸다고 여겼다"며 "우리 연구에서는 토로 무에르토의 암석 속 그림이 콜롬비아 아마존 지역에서 발달한 투카노 문화의 전통적인 암각화와 내용 면에서 비슷하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콜롬비아 아마존 암각화의 기하학적 무늬는 원주민이 식물을 우려내 만든 환각제 아야와스카로 인해 생기는 환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야와스카는 수천 년 동안 아마존 원주민들이 의식 때 사용했다.
안드레이 교수는 "투카노 족은 의식에 필수적인 노래를 그림으로 표현할 때 지그재그 등 기하학적 문양을 사용했다"며 "이들은 의식 참가자들이 아야와스카를 마시고 초월적 정신, 즉 환각 상태가 되면 조상이나 우주와 연결될 수 있다고 봤고, 이런 상태를 기하학적 문양으로 표현했다"고 전했다.
교수는 "이와 같은 해석을 토대로 보면, 토로 무에르토의 암각화들 속 무용수를 감싼 기하학 문양 역시 환각 상태를 의미할 것"이라며 "이번 연구가 당장 정설로 받아들여질 리 없겠지만 스페인 정복 이전의 원주민들은 사람이 느끼는 여러 감각을 적극적으로 시각화했음을 알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