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이 모여 살았던 중세 스페인 바위 동굴에서 근친끼리 관계한 흔적과 심각한 폭력의 증거가 발견됐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지난달 말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낸 조사 보고서에서 이같이 전했다. 연구팀은 스페인 북부 부르고스 트레비뉴에 위치한 중세 기독교인 정착지 라스 고바스 유적에서 뜻밖의 사실들을 여럿 발견했다.
라스 고바스 유적은 바위 표면을 파낸 동굴이 분포한다. 여기서 출토된 유골을 들여다본 연구팀은 마을을 떠나 공동으로 생활하던 사람들이 역병에 시달렸고 폭력으로 얼룩진 유혈사태를 경험한 것으로 판단했다.
스톡홀름대 역사학자 리카르도 로드리게즈 바렐라 연구원은 "라스 고바스 유적에는 6세기 중반부터 11세기 무렵까지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곳은 이베리아반도가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기 전후 도시를 떠난 사람들의 삶을 엿보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동굴 부근 묘지에서 41명 분의 유골이 나왔고, 39명의 유골은 유전자 분석이 이뤄졌다"며 "남성 22명과 여성 11명 등 총 33명의 성별이 밝혀졌고, 28명은 특히 상세한 조사가 가능한 DNA를 얻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이 지역이 중세 이슬람이 지배했던 이베리아반도, 즉 알 안달루스의 북단에 자리하면서도 정착지의 베르베르인 등 북아프리카인의 영향은 극히 미미한 점을 알아냈다. 즉 주민의 압도적 다수는 현지의 이베리아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추측됐다.
유해 2구의 두개골에서는 생생한 폭력의 흔적이 확인됐다. 이들은 유전적으로 근친관계로, 놀랍게도 1명은 칼날이 두개골을 뚫을 정도의 중증을 입었는데도 한동안 생존한 것으로 보였다. DNA 분석에서 두 사람이 칼로 습격당한 시기는 이슬람교도가 이 지역을 정복하기 전으로 파악됐다.

유전자 분석 결과 두 사람은 근친이면서 관계를 맺은 정황이 드러났다. 리카르도 연구원은 "분석 가능한 게놈 데이터가 존재하는 샘플 23건 중 14건, 비율적으로 약 61%에서 근친의 흔적이 있었다"며 "이는 당시 사람들이 집단 내에서 배우자를 찾는 족내혼을 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초기 유골에서는 사람에 전파돼 피부병을 유발하는 돼지단독균도 발견됐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양돈 영위를 의미한다. 비교적 후기인 10세기 무렵 유골에서는 천연두 바이러스의 DNA도 검출됐다. 리카르도 연구원은 "이베리아반도의 천연두는 이슬람교도가 옮겼다는 가설이 있으나, 라스 고바스 유적의 천연두는 같은 시기 스칸디나비아나 러시아, 독일에서 발병한 것과 유사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9~10세기 기독교도 사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이 중요해지면서 사람들의 이동이 활발해졌고 전염병도 창궐했을 것"이라며 "라스 고바스 유적은 격동기 이베리아반도의 생활상을 품은 독특한 유적으로 조사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