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암각화는 4000년 넘게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우주관에 지속적인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 고고학자 캐롤린 보이드 교수 연구팀은 지난달 26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이런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리오그란데 강으로 흘러드는 페코스 강 하류의 로어 페코스 캐니언랜즈 유적 12곳을 대상으로 대규모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이집트 피라미드가 건설되기 전부터 그려진 이곳 암각화들은 어느 한 가지 엄격한 규칙을 지킨 사실을 알아냈다.
캐롤린 교수는 “약 5700년 전 수렵채집인들이 그리기 시작한 이 기록은 그로부터 4000여 년간 이어져 그들이 올려다보던 우주와 세계관을 전승했다”며 “훗날 아즈텍문명으로 이어지는 아메리카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우주관이 이 땅에서 전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페코스 리버 스타일로 불리는 독특한 암각화 양식은 4000년 동안 지속된 점 하나만으로도 연구 가치가 상당하다”며 “무려 175세대에 걸쳐 동일한 규격과 양식으로 그려진 암각화는 선인들이 정성 들여 구축한 도서관과 같다”고 비유했다.
로어 페코스 캐니언랜즈 유적에는 200개 넘는 벽화가 존재하며, 상당수가 거대하다. 폭이 150m, 높이가 15m나 되는 것도 있는데, 당시 사람들은 발판이나 사다리를 이용해 암각화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벽화는 인간과 동물, 수수께끼의 상징들로 구성된다. 안료에 포함된 사슴 골수나 유카 등 식물의 즙을 추출해 분석한 연구팀은 흑색→적색→황색→백색 등 일정한 순서로 색을 칠한 사실을 확인했다.
캐롤린 교수는 “500개 넘는 색 겹침을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선인들은 항상 정해진 순서로 색을 칠했다”며 “검은색으로 바탕을 그리고 빨간색, 노란색을 덧댄 뒤 마지막에 흰색으로 마무리했다. 이 절차는 4000년 이상 거의 예외 없이 지켜졌다”고 설명했다.
교수는 “기후가 건조 또는 습윤해지거나 사용하는 석기가 바뀌는 등 변화가 있었겠지만 벽화를 그리는 규칙만은 확고하게 지켜졌다”며 “이는 그들에게 벽화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절대 허물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의미를 내포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여러 문양을 분석한 연구팀은 선인들이 지켜내려 한 것이 고대 메소아메리카 문명으로 이어지는 우주관이라고 봤다. 캐롤린 교수는 “세계가 어떻게 생겨나고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리고 자신들은 우주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고민한 당시 사람들의 철학적 세계관이 벽화 곳곳에 새겨진 듯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들의 우주관에 천지창조 이야기와 시간의 순환 개념이 포함된 점에서 향후 벽화를 심층 연구할 필요가 있다”며 “운이 좋다면 4000년에 걸친 고대인의 확고한 우주관이 실체를 드러낼지 모른다”고 기대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